Page 7 - 하우인 2024년 9월호 - (주)하우엔지니어링 웹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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■■■ HOWIN | 기획연재 북한의 강과 도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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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 군사전문가들은 만약 남북 분쟁이 발생할 경 ▶ 혜산시
우 이곳 송유관이 급소가 될 것이라 한다. 일제강점기 백두산 원시림을 남벌한 베이스캠
,
프 역할을 한 곳이다. 1945 년 해방 당시 인구
▶ 위원댐 3 만 명에 이르렀다 남벌한 목재들은 이곳 혜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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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 지린(吉林 ) 성 지안(吉安 ) 에서 남서쪽으로 에서 뗏목으로 엮어 압록강 따라 신의주까지 운
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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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0km(25mi) 떨어진 곳과 북한 자강도 위원군 반하였다 당시 혜산에는 일본인 이주민 중국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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에 있다 본래 평안북도에 속했으나 1954 년 행 상인들로 인해 국제화 도시 분위기였다 그 덕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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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자강도로 편입되었다. 산골 도시인데도 외국 문물이 비교적 빨리 유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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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79 년에서 1987 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이 댐 되었다 그 관성 덕분인지 혜산 출신 탈북민이
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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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 65 MW 발전기 대는 1987 년과 1988 년에 가장 많다고 한다 물론 이곳의 압록강은 강폭이
위탁 운영되었다 중국과 북한이 공동으로 소유 불과 100m 도 안 되는 곳이라 한겨울에는 꽁꽁
.
하고 운영한다. 언 빙판 위로 달음박질을 쳐 탈출할 수 있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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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 강 건너 창바이현에서 조선족 자치구인 옌
,
압록강 중상류 혜산시와 만포시 지까지는 걸어서도 10 시간이면 족하다고 한다.
이번 태풍 개미로 인한 홍수 피해는 신의주시만
집중하여 보도되고 있지만 사실은 혜산도 엄청
,
난 피해를 봤다고 한다.
▶ 만포시
만포는 본래 명칭이 만포진(滿浦津 ) 으로 압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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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 상류의 최대 나루터였다 압록강을 사이로 중
국 지안시와 마주 보고 있다 지난 2019 년 만포
.
▲ 사진8. 혜산시 전경 사진 뉴스1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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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
- 지안 대교가 준공되어 신의주 다음으로 북중
.
백두산은 북한에서 혁명의 성지로 통한다 그
교역의 창구 기능을 하고 있다.
’
‘
연장선에서 삼지연시 를 산간 관광도시로 대대
만포시는 철도 만포선이 놓이면서 평안북도 신
적으로 개발한 바 있다 혜산은 압록강에 인접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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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주시 함경북도 회령시 등과 함께 대중국 교역
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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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고 삼지연과 백두산의 관문 도시이다 다음으
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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을 담당했다 압록강의 수운으로 흘려오던 나무
로 만포시는 신의주 훈춘 다음으로 북 중 교역이
·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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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을 철도로 옮겨 싣는 지역으로 발전했다 만포
활발한 도시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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